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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일기

향이 강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고유한 향이 있다고 한다. 향이라고 할까 그 사람의 냄새. 언젠가 친구에게 “나에게서는 무슨 냄새가 나?”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친구는 킁킁거리더니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무향이야 무향”이라고 대답했다.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지만 스스로를 평범해도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하던 당시의 나는 ‘아무리 그래도 향 조차 없는 사람이라니’ 라며 좌절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강한 향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향수를 두세 번 칙칙 뿌린 날에는 온종일 두통으로 고생했다. (향수는 꼭 한 번만..) 대중교통을 탔는데 향수를 강하게 뿌린 사람 곁에 있으면 멀미가 난다. 향이 최소한으로 은은하게 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잘 맞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내 몸에서 향이 나지 않는 것은 우리 가족이 향이 강한 바디젤 제품들보다는 비누를 즐겨 썼던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엄마는 늘 비누를 사서 욕실 서랍장을 채워두셨는데, 하얀 종이로 포장되어있는 비누는 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순해서 눈에 들어가도 따갑지 않았다. 어쩐지 이런 비누라면 환경에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샴푸나 린스의 경우 플라스틱 통에 포장된 것이 대부분이다. 리필이 있다고는 하지만 리필 용기도 비닐인 데다가 가격의 차이도 크지 않아 대부분 플라스틱 통으로 된 제품을 사서 한 번 쓰고 버린다. 또한 그 샴푸나 린스액에 미세 플라스틱이 많이 함유되어있어 하수로 흘려보내면 바다에도 해양 동물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준다. 해양동물을 먹는 인간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일반 샴푸는 향이 강하고 오래 유지되는 대신 자극적이라 두피 트러블이 자주 생겼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영양제를 구입하는 직구 사이트에서 샴푸바를 발견해서 시험 삼아 구입을 해봤다. 샴푸바는 처음 사용해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머리카락이 많이 건조해졌다. 이상하게 마르고 나면 떡이 져서 ‘이건 안 되겠다’하고 살짝 포기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그래도 한번 더 도전을 해보자' 하고 국내 브랜드를 찾아봤다. 사람들이 많이 추천하는 샴푸바를 사봤는데, 향도 좋고 머리를 감고 난 후에도 제법 부드러웠다. 샴푸바만으로는 거품이 잘 나지 않지만 거품망을 사용하면 머리를 감기 좋을 만큼 거품이 생겼다. 두피에 자극도 덜하고 순해서 “이거다!” 하고 정착하기로 했다. 게다가 플라스틱 포장은 하나도 없고, 종이상자에 담겨 판매된다. 물론 오랜 시간 써온 샴푸보다는 부족한 부분들이 있지만 오늘도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다는 만족감과 뿌듯함이 약간의 불편함을 상쇄해준다. 

샤워하는 공간에는 샴푸용 비누와 몸과 얼굴용 비누 두 개만 놓고 사용한다. (미리 사둔 바디제품이나 린스는 다 쓸 때까지 사용하고 더 이상은 구입하지 않을 생각이다.) 가볍고 단출한 풍경이 참 마음에 든다. 향이 강하거나 포장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지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순함을 갖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것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